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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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지배한 왕국. 조선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은 1897년까지이며 그 이후로는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지만 제국이 제국같지도 않아서 걍 조선이라고들 했다.

국호는 고대국가 조선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 다만 개성 사람들은 부심이 쩔어서 조선이라고 안 하고 고려라면서 개겼다고 한다.


  • 조선로리만화.jpg - 조선시대 조혼의 충격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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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개국

이성계위화도 회군 이후 고려 왕은 사실상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이 때 신진사대부들 중에서 정몽주는 이성계의 개혁에는 찬성했지만 이씨가 왕이 되는 건 반대했다. 반면 정도전은 이성계 개혁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이씨가 왕이 되어 새 나라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성계 아들이었던 이방원이가 정몽주철퇴로 때려 죽여버렸다. <s>아름다운 건국과정</s>

정몽주가 뒤지고 나서 얼마안가 고려 공양왕이 물러나고 이성계조선 왕에 올랐다.

성리학을 국학으로 채택하고 불교를 억제하며 권력을 중앙정부에 집중하였고, 조선 초 잠시의 혼란기를 거친 후에는 선진적인 사법체계 및 군, 경의 분리와 방재 전담기관을 웬만한 서양 국가보다 수백 년 앞서 갖추는 등 제법 세련된 면모를 갖추었다. 또 기록하기를 그렇게 좋아해서 500년어치 왕실 기록이 통째로 남아있다.

왕자의 난

사림의 등장

임진왜란

임진왜란

삼포 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게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을 통일하여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천하야욕은 일본 열도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목상으로는 원나라가 자신들을 침략한 복수를 하기 위해 출병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조선땅까지 집어삼키기 위해 전쟁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이묘들이 반대하고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출병을 거부하면서까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정면으로 맞섰다. 제아무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실권자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직할령이 고작 고쿠다카<ref>이게 명목상으로는 연간 쌀 생산량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정량의 고쿠다카당 1명의 병력을 징발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다이묘에게 고쿠다카는 곧 전투력이었다. 참고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고쿠다카가 24만석이었고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직후의 가토 기요마사의 고쿠다카가 51만석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차이인 44만석의 고쿠다카는 어지간한 다이묘 한명의 힘에 필적하는 국방력이었다.</ref> 222만석에 불과해서 고쿠다카 256만석의 영지를 보유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ref>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둘이서 정말 계급장 떼고 맞붙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패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고쿠다카 34만석 만큼 힘이 쎄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차남인 오다 노부카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쪽으로 붙는 바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의 명분을 잃어서일 뿐이지 절대 힘이 약해서가 아니었다.</ref>

한편 조선의 선조는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겨서 황윤길과 김성일을 시켜 일본에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오라고 시켰다. 그들이 일본에 다녀온 결과 의견은 정반대였다.

일본은 결국 1592년<ref>공교롭게도 조선이 건국된 지 정확히 200년이 되는 해였다.</ref>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선봉으로 세워 조선을 침략하도록 시켰다. 이에 조선은 정발송상현이일신립 순으로 파죽지세로 쳐발렸다. 결국 선조는 몽진을 가기로 확정하고 한양에는 세자인 광해군을 남겨두고 자기 혼자만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을 갔다. 광해군은 남아서 의병총사령관이 되었다.

하지만 해전에서는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며 일본의 수륙병진책을 박살냈다. 이에 의병과 관군들이 사기가 올라가고 각지에서 전투를 치뤘다. 선조가 의주까지 도망쳤을 때 명나라가 파병을 왔고 이때 명나라군, 관군, 의병, 승병 등이 모두 합쳐진 4만 대군이 평양성에서 공성전을 벌여 일본군을 무찔렀다. 패한 일본군은 경기도에 있는 벽제관까지 도망쳐서 거기서 매복했다. 명나라군은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벽제관에서 복병을 만나 크게 패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행주 방향으로 철수했다. 행주에는 권율이 지키고 있었다. 권율은 일본군을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두들겨 패놨다.

이후 겨울이 되자 추위가 뭔지 모르고 살던 일본군들은 한반도의 강추위 속에 하나 둘 얼어죽었다. 결국 일본군은 일단 철수하고 명나라를 상대로<ref>조선이 아니다!</ref> 강화 협상을 하게 되는데 심유경이 중개를 하게 되었다.

이몽학의 난

1596년 병신(丙申)년 휴전상태에 돌입하자 전주 이씨 왕족의 얼자인 이몽학이 선조의 무능함을 핑계삼아 난을 일으켰다. 여기에 여러 의병장들이 연루되어 국문을 당했는데 곽재우는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김덕령은 이몽학과 한 패로 몰려 장살당했다.

이후 선조는 의병장과 관군 지휘관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정유재란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 협상을 벌이고 있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허무맹랑한 강화조건 때문에 강화협상은 결렬되었다.

  •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첩으로 보내라.
  •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게 내놔라.
  • 조선의 대신들과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라.
  • 무역증서제를 부활시켜라.

이리 허무맹랑한 조건을 강화조건이라 디미는 바람에 강화는 당연하게도 결렬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 쳐들어와도 이번에는 왜군이 경기도 위로는 못올라왔으며 특히 수군은 이순신에게 매양 얻어터지기만 했다. 이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과 가토 기요마사가 사이가 나쁘다는 것을 이용해서 계략으로 이순신을 짤라내는데 성공한다. 이순신 후임으로 들어온 원균이 칠천량으로 출병하자 완전히 박살을 내놓았다. 조선 수군 역사상 유일한 패배였다.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이순신을 복직시켰는데 이순신이 명량대첩을 이룩해서 조선 수군을 회생시켰다.

이 와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운지하고 그 때문에 일본군은 전면철수에 돌입했다. 하지만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등 왜장들은 울산 등에 감금당한 채 권율, 이순신, 진린이 지휘하는 조명연합군에게 포위당했다. 이때 일본군이 어찌나 처참한 상황이었는지 먼저 죽은 병졸의 시체를 구워먹고 군마를 도축해 먹는 등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결국 시마즈 요시히로가 노량진에서 고니시와 가토를 구출하려고 수군을 이끌고 와서 이순신에게 탈탈 털렸고 그 와중에 고니시와 가토는 탈출에 성공했다. 이렇게 임진왜란이 1598년에 종결되었다.

후일담

명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급속도로 국력이 약해진 데다가 간신배들의 국정논란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명장인 국경지대 방어사령관 원숭환을 죽이는 병크를 터뜨려가며 멸망하고 말았다. 그 자리에는 만주족 출신 국가인 청나라가 들어왔다.

조선은 전국토의 66%가 황폐화되었으며 광해군이 외교조율을 잘하고 있던 것을 괜히 능양반정을 일으키는 바람에 능양군이 임금이 되는 바람에 무능하고 더러운 능양군으로 인해 안해도 될 전쟁인 병자호란을 겪었고 그로 인해 삼전도의 굴욕 등 온갖 수난을 당했다.

일본은 이시다 미츠나리와 우에스기 가게카츠가 난을 일으키는 바람에 1600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이 맞붙어 세키가하라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권모술수 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시다 미츠나리의 서군에 소속된 다른 다이묘들에게 뒷구녕으로 작업쳐서 배신하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를 날로 먹고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시다 미쓰나리, 안코쿠지 에케이, 고니시 유키나가는 온갖 굴욕을 당한 끝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살해당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손에 넣은 뒤 에도막부를 설립해서 일본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인 에도시대를 시작했으며 메이지유신이 발생하는 1800년대 후반까지 260년 동안 일본은 도쿠가와 가문이 지배하게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지배자가 되자마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을 폭파시켜버리고 소 요시토시를 시켜 조선에 전쟁을 일으켜서 죄송하다고 빌게 했다. 조선은 계속 삐져있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에 끝까지 출병안하고 버텼다는 점이 정상참작되어 1607년에 일본을 용서해주고 다시 일본과의 외교를 재개했다.

전간기

일단 임진왜란이 끝나긴 했는데 일본군이 휩쓸고 간 탓에 국토가 완전히 개판이 되었으며 특히 궁궐은 다 파괴되어 도성으로 쓸만한 궁이 한개도 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을 얻어다가 그걸 임시로 궁궐로 삼았으니 이를 덕수궁이라 한다.

선조는 임진왜란 기간 동안 한 것이라고는 존나게 도망다닌게 전부였고 궁여지책으로 임명한 세자인 광해군은 전국 의병 총사령관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운 탓에 이미 광해군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애초에 광해군은 차남이었고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이 워낙 싸이코패스<ref>그냥 괜히 대신을 칼로 찔러 죽이며 히히덕거릴 정도였다.</ref>로 악명이 높아서 어쩔 수 없이 언 발에 오줌누는 심정으로 임명한 세자였다. 그런데 전란 도중 영창대군이 태어났고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에서 폐립시키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조가 죽었다.

좀 뜬금없지만 진짜로 선조가 저러다 죽었다. 결국 폐세자 과정에 있던 광해군이 아직은 세자 신분인지라 그대로 즉위했다. 광해군은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성들만 못한 임해군을 죽인 뒤 자신의 제위에 부담을 주는 영창대군 마저 죽였다. 집안문제만 좀 이렇게 지저분했을 뿐 광해군은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천하명군으로 특히 외교의 달인이었다.

이 와중에 명나라와 청나라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때 광해군은 강홍립 장군에게 정병 5천명을 주고 중국땅으로 파병시켰으나 파병하기 직전 귓속말로 밀명을 하나 내렸다. 명나라가 가망이 있으면 명나라를 도와주고 명나라가 가망이 없으면 청나라로 붙으라는 것이었다.

막상 강홍립이 중국에 가 보니 명나라는 완전히 개판이라 언제 멸망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에 강홍립은 명나라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청나라에 포로로 잡혔고 청나라 군대와 싸울때도 고의로 화살촉을 빼버린 빈 작대기만 쐈다.

강홍립은 잘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조정이었다. 이때 능양반정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광해군이 왕에서 쫓겨나고 능양군이 왕이 되었다. 능양군은 연산군에 버금가는 천하암군으로 그가 한 치세는 모조리 병크뿐이었다. 결국 광해군이 애써 만든 외교망을 능양군이 다 헐어버리고 무조건 명나라 편만 들어주겠다면서 말만 뻔지르르하지 현실은 시궁창인 대의명분을 걸어 청나라에 싸움을 걸었다. 그것이 병자호란이었다. <s>싸움을 걸었으면 싸우든가. 싸움만 걸어놓고 도망질하는 능양군 이종 씹새끼좀 보소.</s>

병자호란

숙종치세

숙종은 아들은 혼자만 태어나고 나머지는 죄 여자 형제들만 태어나는 바람에 태어난 즉시 세자가 되었다. 숙종은 그냥 자라기만 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악질 간신배인 송시열은 숙종이 뭘 하든 사사건건 훼방에 딴지에 간섭에 아주 숙종의 피를 노골적으로 말려댔다.

숙종이 말하기를 틀:인용문2

이러면 반드시 송셜새끼가 나타나서 틀:인용문2

항상 이런식이었다. 숙종은 죽을 맛이었다. 문제는 송셜새끼의 이런 불충함이 극에 달하는 행태가 숙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는 점이었다. 보통 세자에게 권신이 까불고 무례하게 굴어도 그 세자가 즉위해서 임금이 되면 함부로 못까부는 게 정상인데 송셜새끼는 눈에 너무나 뵈는 게 없는 나머지 숙종이 임금이 되고나서도 이지랄이었다. 결국 숙종은 꾀를 냈다. 송셜새끼의 서인과는 반대파인 남인 쪽에서 후궁을 맞이하기로 한 것이었다. 마침 남인에 종 6품 포도부장인 장희재가 있었는데 장희재에게는 미모가 출중한 여동생이 있었다. 그래서 숙종은 인현왕후를 멀리하고 장희재의 여동생을 궁녀로 들이게 한 다음 다짜고짜 성관계를 했다. 그리고 장희재의 여동생에게 억지로 승은을 입힌 뒤 희빈에 봉해버렸다.

그래서 인현왕후는 계속 슬하에 자녀가 없었는데 장희빈이 득남했다!

이에 숙종은 자기 아들이 태어났다고 오바질까지 하면서 기뻐했고 이 아이의 돌잔치때는 유례없을 정도로 커다란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이를 꼴아본 송셜새끼는 누가 간신배 송셜새끼 아니랄까봐 숙종에게 또 딴지를 걸었다.

틀:인용문2

이에 숙종은 제대로 된 꼬투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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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숙종은 송셜새끼를 유배보낸 뒤 사약을 먹였다. 문제는 송셜새끼가 사약을 먹으면서 한 말이었다.

틀:인용문2

이에 금부도사가 송셜새끼한테 빌었다.

틀:인용문2

그렇게 송셜새끼는 사약을 맛나게 먹고 뒈졌다. 참으로 쌤통이다. 이후 숙종은 겉으로는 장희빈과 놀아나면서 인현왕후의 엉덩이를 발로 뻥 차버리고 폐서인을 만들어 추방한 뒤 장희빈을 중전으로 만들었고 속으로는 남인과 서인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모르는 남인은 숙종이 완벽하게 자기 편이 된 줄 착각하고 마구 전횡을 부렸다.<ref>특히 장희재가 젤 쩔었는데 자기 여동생이 중전됐다며 동네방네 자랑질하고 다녔고 소년배들을 모아다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ref> 그렇게 되다 보니 숙종은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인현왕후를 불러들이고 이번에는 장희빈의 엉덩이를 발로 차버렸다. 하지만 서인을 견제는 해야겠으니까 폐서인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씨 성을 가진 무수리를 꼬득여서 또 억지로 승은을 쳐 입히고 난 뒤 숙빈으로 봉해버렸다.

최숙빈도 득남했다. 만세!

숙종은 인현왕후는 바지로 남겨두고 최숙빈으로 남인을 견제하고 장희빈으로 서인을 견제했다. 잘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상황파악이 된 서인들은 숙종의 말을 고분고분 잘듣게 된 반면 남인들은 장희빈을 다시 중전으로 앉히려고 술수를 부리다가 들켜서 장씨남매 둘이 같은 날 사형당했는데 장희빈은 사약먹고 장희재는 참수당했다. 이때 장희빈은 사약먹기 싫다며 발악하다가 궁녀들이 바치는 사약을 발로 차버리는 등 행패를 부렸고 결국 수십명의 궁녀들이 장희빈의 사지를 꽉 붙잡고 사약을 억지로 먹여 죽였고 장희재는 살려달라고 울며 불며 애원하다가 망나니한테 실컷 얻어터지고 참수당했다.

이와 같이 숙종이 얘를 이용해서 쟤를 견제하고 또 걔를 이용해서 얘를 견제하는 등 뛰어난 정치능력을 능수능란하게 발휘하자 모든 문무백관들이 숙종에게 절대복종했다.

막장화의 시작 세도정치

정조 임금 승하 후 조선의 왕권은 크게 약화되어 결국 문벌(文閥) 세도가문에서 정권을 잡고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십상시 놈들마냥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그 문벌 가문 중에서도 이름있었던 두 가문이 안동 김씨<ref>그 김좌진김두한이 안동 김씨이다.</ref>와 풍향 조씨였다.

철종 치세

시골 소년 이원범은 강화도에서 그냥 나뭇꾼이나 하면서 먹고 살았다. 당시 조정은 이하응의 가까운 일족인 이하전이 능력있으니까 제위에 앉히자고 했다. 하지만 이를 들은 안동 김씨는 귀신같이 술수를 부려 이하전을 숙청해버렸다. 그리고 최대한 멍청한 놈을 왕으로 앉히려고 대상자를 물색했다.

시골 소년 이원범은 비록 신분은 양민이었지만 가문은 엄연한 전주 이씨였고 명백히 이성계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날 원범이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산에서 나무를 베어서 갖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웬 정승들이 도열해 있었다. 원범이는 깜짝 놀랐는데 정승들이 자신에게 다짜고짜 "주상전하"라는 호칭을 써서 기절초풍했다. 원범이는 그 날 정승들을 따라 조정 궁궐에 들어갔고 그날부로 즉위했다.

이원범은 일단 뜬금없이 임금이 되긴 했는데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임금이었다. 때문에 궁궐에서 이원범에게 예법이나 학식을 급조해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거지로 왕으로서 최소한의 능력을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철종(이원범)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고 교육과정이 다 끝났어도 여전히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다. 결국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 운지하고 만다.

대원군

쇄국정책이라는 2천만년짜리 변비정책을써서 지금의 불반도를만든 주인공이다

개화

한편 사림의 집권으로 유학이 교조화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개나소나 돈주고 양반 신분을 사서 병역과 조세를 회피하는 한편 붕당정치가 무너지고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며 이는 삼정의 문란을 야기해 군사력은 녹아내렸고 사회 분열은 심화되었다. 단지 지리적인 특성 탓에 군대가 불구가 된 나라치곤 꽤 오래 버티다가 1910년 일본에 병합되어 망했으며 이를 경술국치라 한다.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은 1910년에 조선이 망했다고 생각하지만 1910년에 망한 건 대한제국이고, 조선은 1897년에 스스로를 왕국에서 제국으로 격상시켰다. 왜 그랬냐면 1895년 청일 전쟁 이후 조선은 자주 독립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만 해도 조선은 일본의 침략 의도를 잘 몰랐다. 청일 전쟁 이후 조선은 독립국이 되어서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아도 되고 청나라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고종이 스스로를 황제라고 칭한 것이다.<s>실상은...</s>

대한제국

틀:국가 정보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고종황제가 환구단에서 선포하여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채결되기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통치했던 국가이다. 약칭은 대한(大韓), 한국(韓國)이며, 현대의 대한민국과 구별짓고자 때때로 구한국(舊韓國), 구한말(舊韓末)이라는 표현도 쓰인다.

제국의 성립

19세기 말,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은 을미사변아관파천을 위시한 열강의 침략에 대항할 필요성을 느꼈다. 자주적인 독립국가 수립을 외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1897년 경운궁에서 환궁한 고종황제는 그해 8월 17일 광무(光武) 연호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10월 3일 황제 칭호 건의를 수락하였다. 그후 고종은 10월 12일 환구단(혹은 원구단)에서 제사를 지낸 뒤 국명을 대한제국이라 고치고 고종 자신은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였다. 물론 자주국가라고 해도 이름만 바꿨을 뿐인 대한제국을 제대로 된 독립국으로 인정해주는 열강은 많지 않았다. <ref>일단 대한제국이 선포되자 러시아 제국, 프랑스는 국가원수가 직접 승인하였고 미국, 영국, 독일도 간접적으로 대한제국을 승인하였다.</ref>게다가 제국 내에서도 내란 음모나 독립 협회 등 고종을 견제하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고종은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1899년 8월 17일 일종의 헌법같은 '대한국 국제'(大韓國 國制)를 발표하였다. 대한국 국제는 대한국 대황제(고종)이 무한한 군권을 지닐 수 있다는 내용의 법전으로써, 이는 곧 대한제국이 전제군주제 국가가 된다는 의미였으며, 이런 행동은 시대착오적인 성격이 있었다.

제국의 근대화 개혁

독립협회와 만민 공동회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서재필안경수,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 박정양 등에 의해 1896년 독립협회가 결성되었다. 독립협회는 제국의 자주성을 강조하고자 청나라 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독립협회는 '자주독립, 자강개혁, 자유민권' 이 세가지 사상을 내세워 제국을 개혁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독립협회는 백성들을 계몽시키고 정치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지식인이나 정부 관료들과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이러한 토론회나 강연회를 꾸준히 열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만민 공동회가 있었다. 만민 공동회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민중 집회이자 시위 운동이였다. 1898년 독립 협회의 주도로 종로에서 열린 첫 만민 공동회는 대한제국을 침략하려는 러시아를 약 1만 명의 민중들이 비난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만민 공동회의 성공으로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백성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1898년 10월 종로 네거리 광장에서 '6개조 개혁안'을 결의하고 그 실행을 고종에게 건의하였다. 그러나 만민 공동회의 혁신운동과 백성들의 정치 참여에 위기를 느낀 보수 정부는 결국 1898년 독립 협회를 강제로 해체되었다.

광무개혁의 실시

단발령과 삭발령

국권 침탈 및 국권 수호 운동

한일병합

행정

행정단위상으로 구분하면 대한제국은 제국이 아니다. 그냥 청나라가 제국이라니까 이에 지지 않으려고 이름만 제국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즉, 다시 말하자면 청나라의 책봉국이 아님을 선언하기 위해서 제국이라 부를 뿐이지 실제로 대한제국은 제국이 아니다.

왜냐 하면 제국이 되려면 그 휘하에 왕국을 여러개를 두고 있어야 하는데 대한제국에는 휘하왕국이 없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제국은 거의 전부 휘하에 왕국을 두었다. 원제국도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휘하 칸국을 두고 있었다. 만약 미국이 대통령제가 아니라 군주제였더라면 미국은 얄짤없이 제국이다. 각 주를 왕국으로 둔 제국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대한제국일 뿐이다. 행정학을 공부해 보면 이 말이 뭔 뜻인지 잘 알 것이다.

외교

군사

계급

  • 원수급
    • 대원수 - 황제가 군통수권자 자격으로 겸임.
    • 원수 - 황태자가 겸임. 통수기구인 원수부의 명목상 수장.
  • 장군급
    • 대장 - 참모부 총장, 황제 시종무관부 무관장. 종1품.
    • 부장 - 참모부 총장, 교육총감, 황태자 배종무관부 무관장. 정2품.
    • 참장 - 참모부 국장, 원수부 산하 각 국 총장, 교육부 총감/부감/참모장, 헌병사령관. 종3품.
  • 영관급
    • 정령 - 시위연대장. 종3품.
    • 부령 - 진위연대장, 기병병과장, 공병병과장. 종3품.
    • 참령 - 대대장, 종3품.
  • 위관급
    • 정위 - 중대장, 종3품.
    • 부위 - 소대장, 종6품.
    • 참위 - 소대장, 종6품.
  • 교관급(한국군의 부사관)
    • 특무정교 - 정 8품
    • 정교 - 종 8품
    • 부교 - 정 9품
    • 참교 - 종 9품
  • 군졸급(한국군의 병사)
    • 상등졸
    • 일등졸
    • 이등졸

비판

틀:한국사

자주 까이는 왕조

조선만큼 국까들의 좋은 먹잇감은 사실 없다. 비단 국까들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 또한 <s>세종대왕과 같은 먼치킨 왕을 제외하고</s> 매우 안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과거의 고구려, 발해처럼 땅따먹기를 간지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와 조공질이 가득했으며, 나라 안에서는 정치싸움 삽질이 정말로 주가 된 500년 왕조이기 때문이다.

저러다가 <s>정신줄을 놓은</s> 일본까지 임진왜란때부터 바다건너 쳐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그걸 또 일방적으로 쳐발리기만 했고<ref>이순신이라는 엄청난 영웅이 등장했지만 이게 또 백의종군이 두번이나 터지는 바람에 까인다</ref> 이후엔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일까지 겹치니 더욱더 이미지가 나빠졌다. 나라가 망할 때가 되다보니 민자영(민비,명성황후)같은 희대의 나라 팔아먹은 개쌍뇬이 등장했는데도 이상한 국뽕버프를 받아 창작물에서는 나라의 국모드립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까들이 더 깐다 카더라.

반박

땅따먹기를 멋있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종대왕 시절 4군 6진을 개척해서 함경도에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백두산을 우리 땅으로 만들었다. <s>지금은 사실 아니지만..</s> 사실 고구려, 발해 시절에도 백두산이 한민족의 땅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백두산은 여진족 영산이었다. 솔직히 꼭 땅이 넓어야만 좋은나라인가? 그렇게치면 짱꼴라는 대한민국보다 몇십배는 좋은나라가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의 대명 사대 외교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었다. 임진왜란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줘서 명나라를 진짜로 고맙게 생각한거지.

붕당 정치에 대해서도 얘기하자면, 정치 싸움을 안 하고 우매한 임금이 제멋대로 나라를 말아먹느니 정치 싸움이라도 해서 좀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더 나았다. <s>물론 모함으로 인해 사약 먹은 사람들은 ㅈㅅㅈㅅ, 사실 정조 죽은 다음부터는 정치 싸움도 없어지고 세도 정치로 변질........</s> 그리고 200년간 평화롭던 조선이 싸움만 한 왜놈들에게 임진왜란때 일방적으로 쳐발리는건 당연한거 아닌가? 그리고 아무튼 최후의 승자는 피해는 컸지만 결국 조선이었다.

그리고 선조가 위쪽으로 열심히 런질을 했다곤 까이지만 고국원왕의 경우는 파견, 조공(朝貢)을 바쳐 미천왕의 시체와 왕비를 찾아오는 등 고국원왕의 각종 굴욕들은 어찌 설명할 것이며, 고국원왕이 전사함으로써 백제와 후연에게 샌드백 신세를 당하며 기존에 영토마저 뺏긴 것을 소수림왕과 광개토대왕이 수습하느라 개고생을 했던 것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고국원왕 사후에 고구려 상황만 봐도 조선왕조가 과연 까일만한건지 모이겠다.

임진왜란 시절 이순신 장군은 또라이 임금 선조백의종군 시켜버렸고, 왜적에 맞서 싸운 김덕령 장군도 선조가 장살시켰다...다만 김덕령은 굉장히 과대평가된 인물이고 어떻게 보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만들어준것도 선조의 공이 크니 너무 까기만 하진 말자 그리고 제발 명성황후 같은 사람들 좀 국뽕 새끼들이 미화하지 말았으면 한다.

게다가 조공바쳐서 졸라 굴욕적이라면서 까이던데 당시 중국과 붙어있었던 나라엔 조공은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으며, 정작 중국왕조도 북방 유목민에게 굽굽댄 적 도 있었다.

그리고 사대조공한건 한반도의 국가들 중에 안한 나라가 사실상 없는데 조선만 까는건 역사 처모른다고 인정하는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사대 자체가 센 나라랑 친하게 지내면서 오히려 챙길 거 더 챙기는 것으로 중국에선 조선보고 조공 좀 그만 보내라고 했다. 왜냐고? 조공을 보내면 그에 몇배에 해당하는 하사품을 내려야 하니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일본은 조공 바치려고 명나라에 애걸복걸을 해댔고 북방 유목민들(몽골)은 보내지 말란 조공 억지로 보내면서 하사품 뜯어냈다.

이건 뭐 종북애들이 대한민국이 미국이랑 친한걸 가지고 북한 주장에 부화뇌동해서 식민지 운운하면서 미국이랑 관계끊고 우리민족끼리 놀자고 외치는 거랑 별반 다르지도 않은 소리다.

조선이 그렇게 까댈라면 고려는 안 까고 어떻게 넘어가나 모르겠다.

중국과 붙어있는 나라에 있어서는 조공의 거부는 곧 싸움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흔한지라 조공 안바치고 싸웠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굴욕적인 역사나 아님 중국에게 합병되어 우덜 죄 다 조선족이 되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애초에 현대인 시각에서 헬 아닌 전근대 사회가 어디 있을까 다수 비교해보면 헬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엉망인게 있다. 최소 한국 정도의 씹헬 지리적 위치면 이정도의 산업국가 수준 확립한것만해도 기적이라고 할 정도인데

아, 그렇다고 국뽕이나 중뽕좀 쳐빨지 말고

역대국왕

  1. 태조 - 이성계. 고려의 장수였으나 난을 일으키고 정권을 탈취한 뒤 고려 왕족인 왕씨 가문의 삼족을 멸했다. 무예가 뛰어나서 궁마술의 달인이었다. 어느 정도 달인이었냐 하면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화살로 쏴서 맞추는 기행을 벌일 정도였다.
  2. 정종 - 이방과. <s>왕 잘하고 있다가 동생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했다.</s> 이방원이 조진건 1차 왕자의 난떄 이방간 이다. 정종의 경우 바지국왕으로 추정되며, 후에 태종한테 왕위 넘기고 태상왕 하면서 잘먹고 잘살다 늙어죽었다.
  3. 태종 - 이방원. 이성계의 아들이자 최측근으로 온갖 못된 짓을 했다. 선죽교를 지나가는 정몽주를 모닝스타로 쳐 죽였고 자기가 왕 해먹으려고 형제들을 마구 도축했다.
  4. 세종 - 이방원의 셋째 아들. 장남 양녕대군 등이 왕하기 싫어서 미치광이 코스프레를 해가면서 등떠미는 바람에 졸지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범죄를 속죄하기 위해 천하성군으로 거듭났다. 한글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 여러가지 발명품을 만들도록 조치했으며 천민인 장영실을 그 재능 하나만으로 중용하는 등 온천하의 존경을 받을만한 임금이다.
  5. 문종 - 세종대왕의 장남. 4군 6진을 개척한 것을 세종의 업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은 문종의 성과이다. 건주여진을 복속시키고 오늘날의 한반도라는 영역을 완성시킨 임금.<ref>물론 지금 그 땅을 모 반국가단체가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빛바랜 감이 없잖아 있지만..</ref> 만약 문종이 정복군주로써의 야심을 가졌더라면 조선의 영토가 우리가 아는 영토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6. 단종 - 세종대왕의 손자. 장손인 덕에 왕이 되긴 했는데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당했다.
  7. 세조 - 이유. 세종대왕의 차남. 수양대군. 단종이 머리에 피도 안말랐는데 왕질하는 게 더럽고 아니꼬와서 난을 일으켰고 이 난이 성공해서 단종을 폐위시킨 뒤 자기가 왕했다. 그 후 단종을 숙청했다.
  8. (덕종) - 이숭. 세조의 장남으로 예종, 성종, 월산대군 등의 아버지인데 병약해서 일찍 죽었다.
  9. 예종 -
  10. 성종 - 나라는 잘 다스렸지만 놀고 먹기를 좋아하고 아버지로서는 빵점이다. 후궁의 이간질로 연산군의 생모를 죽이는 등 업적도 많았지만 과오 역시 많았다.
  11. 연산군 - 조선 역사상 최악의 암군. 어머니의 죽음에 불만을 품고 밑도 끝도 없는 숙청을 자행하고 퍼질러지게 놀고 먹기만을 반복하는 바람에 나라를 안다스려 버렸고 이에 중신들은 누군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데 아무도 다스리지 않자 결국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했다. 이 시기가 조선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로 홍길동의 난도 이 때 발생했다.
  12. 중종 - 연산군이 쫓겨난 후 신하들에 의해 옹립된 왕. 하지만 매양 파평 윤씨 일족들의 손아귀에 놀아났을 뿐이고 바지 왕이었다. 파평 윤씨 중에서도 윤원형이 아주 악질 권신이었는데 그런 윤원형의 빵셔틀 노릇을 한 게 임금으로서 한 모든 행위이다.
  13. 인종 - 중종의 아들로 완전 대인배다. 자신을 해치고 왕위를 노리는 복성군마저 감싸안을 정도였다. 하지만 병약해서 중병이 들자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면서 동생인 명종에게 선양했다. 선양하고 얼마 못가 죽었다.
  14. 명종 - 중종의 아들로 인종에게 선양받아 즉위했다. 나라를 어떻게든 잘 다스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이 때 임꺽정의 난이 발생했다.
  15. 선조 - 자기 혼자밖에 모르는 암군. 중종의 후궁 중 하나인 창빈 안씨의 후손으로 왕노릇 잘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임진왜란이 터졌다. 거기다 이몽학의 난까지 터져서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탐욕 쩔고 의심 많아서 괜히 이순신을 미워했으며 정말 반정 안일어난게 다행인 암군이다.
  16. 광해군 - 세종대왕급 명군. 즉위하자마자 국제정세를 잘 파악해서 조선의 안전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수행하던 도중 탐욕스러운 무리들에 의해 반정으로 쫓겨나고 그 자리에는 연산군급 암군인 능양군이 즉위한다.
  17. (원종) -
  18. <s>인조</s>능양군 - 천하암군 이종 씹새끼. 반정은 얘가 당해야 마땅했다.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여 국가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던 광해군을 밀어내고 왕이 되었지만 그 정책을 계승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백지화시키는 바람에 안해도 되는 전쟁인 병자호란을 치뤘다. 그런데 이종 요 쥐새끼가 병자호란때 한 짓이라고는 한양에서 강화도로 야반도주하다가 용골대에게 딱걸린거 하나뿐이 없다. 결국 청나라 황제도 아니고 일국의 군주씩이나 돼갖고 쪽팔리게 일개 장군에 불과한 용골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는데 그게 삼전도의 굴욕이다. 자녀문제도 개판으로 소현세자를 괜히 죽여버렸다.
  19. 효종 - 효종은 조선 임금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가톨릭이었다. 일찌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거기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가톨릭도 거기서 알게 되어 카톨릭을 믿게 되었으나 대신들이 서양 오랑캐의 종교를 믿으면 안된다며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가톨릭을 몰래 믿어야만 했다.
  20. 현종 -
  21. 숙종 - 대단한 명군이다. 겉으로 보기엔 여자들의 치맛자락에 놀아난 왕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권모술수의 신이다. 천하의 간신배인 송시열<ref>숙종이 세자시절부터 뭐만 하려면 반대하고 훈장질하고 괴롭힌 것으로 악명높은게 송시열이다.</ref>을 희빈 장씨를 이용해서 제거하더니 그 희빈 장씨 역시 숙빈 최씨를 이용해 제거했다. 항상 불리한 쪽에 붙어서 놀아먹다가 그쪽이 유리해지면 다시 불리한 쪽으로 붙는 등 시소놀이의 달인으로 처세를 무지하게 잘했다. 중요한 건 숙종은 지금 대선에 출마해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다.
  22. 경종 -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병약해서 제위 4년 만에 죽었다.
  23. 영조 - 명군이긴 하지만 암군적 기질도 보였다. 조선 왕들 중 제위가 가장 긴 왕으로 장장 52년에 달하는 긴 치세기간을 자랑한다.<s>와~ 부럽다.</s> 탕평책을 도입하고 여러가지 제도를 정비해서 국가를 크게 안정시켰으며 이 때가 조선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였다. 하지만 간신배들에게 놀아나서 사도세자를 곽 안에 가둬 죽인 건 옥의 티다.
  24. (진종) -
  25. (장조) - 영조의 아들로 사도세자이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었는데 간신배들의 꾐에 빠진 영조에 의해 곽 속에 갇혀 죽었다.
  26. 정조 -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 영조 못지않게 나라를 잘 다스렸다.
  27. 순조 -
  28. (문조) -
  29. 헌종 -
  30. 철종 - 이원범. 안동김씨 놈들이 자기네 바지왕으로 삼으려고 이렇게나 촌수가 멀어터진 놈을 왕으로 옹립했다. 평생 양민으로 살다가 갑자기 왕이 된 탓에 준비가 부족한 임금이었다. 그리고 뭘 하려고 해도 안동김씨 놈들이 항상 딴지를 걸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31. 고종 - 이제황.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차남. 원범이랑 똑같이 얘도 바지였는데 항상 아버지랑 마누라(명성황후 민씨) 사이에서 갈팡질팡만 했다.
  32. 순종 - 마지막 왕.

같이 보기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