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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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쇼린이는 모에남자 어린이를 말한다. 여장하는 경우도 많다. 메갈리아, 워마드, 아름드리 위키, 페미 위키메오후(메퇘지)들이 강간윤간하는 걸 좋아한다.


쇼린이 후장에 쑤컹쑤컹~


쇼타 + 어린이 = 쇼린이

로리 + 어린이 = 로린이


+ 어린이 = 좆린이

+ 어린이 = 봊린이

좆린이 사육장

  • #11615 2019-5-22 오전 1:16 [삭제]

이거 뭐냐? 옛날 USB에서 찾은건데 여기 좆린이 사육장임? http://felixxxboni3mk4a.onion/img/uploads/190521/Felixxx_161431_gnb_122.jpg http://felixxxboni3mk4a.onion/img/uploads/190521/Felixxx_161533_fPw_176.jpg

기숙사 같은데에 좆린이들 존나 많은데,,유명했을것 같아서 물어봄


1: http://felixxxboni3mk4a.onion/img/uploads/190521/Felixxx_162723_wjo_1436551983370.jpg http://felixxxboni3mk4a.onion/img/uploads/190521/Felixxx_162802_hZM_1436552768318.jpg 이건 모자상간 들중 와꾸 괜찮은거 두개 [삭제] 2019-5-22 오전 1:28


2: >1 애미 갱뱅하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두 불러서 몇십명이서 [삭제] 2019-5-25 오전 1:47


5: >1 우리 엄마같아서 존나 꼴리네. 나도 저 쇼린이처럼 엄마 따먹고 싶다. [삭제] 2019-5-26 오전 1:32


3: 좆린이 잡아다가 강간하는게 무슨 큰 실수냐? [삭제] 2019-5-25 오전 2:19


6: >3 좆린이든 봊린이납치해서 강간하는 것까지는 문제 없는데, 풀어주면 애미경찰신고함. [삭제] 2019-5-26 오전 1:38


4: alireza [삭제] 2019-5-25 오후 1:32

http://jqu6my2mlqp4zuui.onion/p?id=11615

쇼린이 사랑의 역사

한국

신라시대의 화랑이 동성애를 했다고 추측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위작으로 의심받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근거를 두고 있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정확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때는 목종이 천추태후의 등쌀에 국정에 흥미를 잃고 동성애에 몰두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절요에서도 그 덕분에 목종에게는 자식이 없다는 얘기도 적혀있다. 공민왕은 자신의 뜻대로 정국이 돌아가지 않자 향락에 빠져 자제위 등을 설치해 미소년들에게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사》는 왕과 자제위의 소년이 관계를 맺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공민왕의 조선시대가 되어 유교가 사회질서로 정립됨과 함께 동성애는 본격적으로 음지로 숨어든다. 조선시대의 가장 큰 동성애 스캔들은 세종대의 세자빈 순빈 봉씨 사건이었다. 순빈 봉씨는 시녀들과 동성애 행위를 계속해서 남발하다 들켜서 폐출당하고 결국 자살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항목 참조. 《백범일지》에도 치하포 사건으로 복역 중이던 시절, 남색 커플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에서는 후정(後庭)놀음이라는 이름으로 간간히 행해졌다는 조선 기록이 남아있다. 단 이를 두고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허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런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불교를 까내리기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근대의 경우 권장은 아니더라도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개화 이후 나타난 신여성들의 경우 아직 구식인 가정이나 신지식인인 척 하면서 신여성을 노리는 유부남들을 피해 자신들끼리 애틋한 감정을 느끼고 동성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비관해 동반자살한 사례까지 있다.[* 이는 전세계 공통으로 여권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고 여성들의 학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일본 역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여류문학가들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짙었다.] 이 일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자, 비슷한 사건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남성 역시 기숙사의 발달로 동성애적 사건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당시 근대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결혼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쁘게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저 사춘기 때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편견이 팽배했으며, 이 편견은 역설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가 되었다. 다만 동성애 문제가 연애를 넘어 결혼까지 가는 경우 이야기는 달라졌다. 청소년시절 연애에 있어서는 자유로웠을지 몰라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많은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여자가 여자와 아예 결혼식을 올린 용자급 사례도 드물지만 있긴 있었고, 이것은 당시 신문에서도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춘원 이광수의 작품 중 남자 대학생이 남자 동급생에게 묘한 감정을 품는다는 〈윤광호〉라는 작품도 있다. attachment:/1930s-homosexuality.jpg ▲ 1930년대 신문 삽화에 레즈비언의 연애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는 근대 이후로 세력이 급격히 확장된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무작정 배척하는 것에 탄력을 받아 인식이 많이 나빠졌다. 그러나 단지 기독교, 특히 개신교 하나 때문에 인식이 나빠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개신교 신자는 아니지만 동성애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목소리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성애규범성(heteronormativity)이 종교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특정 종교의 종파가 범문화적인 이성애규범성을 "전부" 설명한다는 생각은 명백하게 성급한 것이다.

해외

고대 그리스에서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권장했는데, 이유는 동료애를 심고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는 특성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테베신성부대연인과 같은 부대에 있으면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다라는 이유로 아예 동성애자로 구성된 부대였다고. 게다가 전과도 괜찮았다. 첫전투가 스파르타였는데 승리. 그런데 마지막에 알렉산더 대왕과 마주치는 바람에... 플라톤의 《국가》 같은 걸 보면 소크라테스가 소년애(少年愛)를 완벽한 사랑이라 찬양하는 구절도 있다. 신화에서 남신들이나 영웅들이 아름다운 소년들을 후리는 이야기도 드물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가니메데. 무려 주신 제우스가 직접 보쌈한 이 청년은 후에 제우스의 이름을 딴 목성위성중 하나의 이름이 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그리스인들은 소년애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남존여비 사상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신화 상에서 취급이 좋지 않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에서 여성은 심하게 말해서 애 낳는 기계 취급이었다. 여성을 통해서는 육욕만을 해소할 수 있으며 진정한 정신적인 사랑은 남성과 남성만이 할 수 있다는 것.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남성들끼리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일종의 유희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리스인들 스스로가 자기들의 문화에 붙인 설명일 뿐이다. 아무리 그리스인들이라도 남자를 사랑할지 여자를 사랑할지의 문제를 정말로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자 동성애의 경우, 플루타르크의 기록에 의하면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서 여성간의 연애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고 예를 들어 스파르타에서는 귀부인이 미모의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매우 낮았던 만큼 남성 동성애에 비해 그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에서도 모든 종류의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여겼던 것만은 아니다. 소년이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와 어울리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여겼다. 특히 성인 남자가 소년들이 맡는 성기를 받는 역을 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성애 자체를 성적 타락이라고 깠지만 아무래도 이 사람은 그냥 플라톤의 모든 것이 싫었던 것 뿐이었을지도... 고대 로마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동성애가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더라도 이질적인 풍습으로 인정은 되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로마 시민 측이 삽입당하지 않는 역할일 때에 한정되었다. 가부장적인 관습이 강했던 로마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삽입당하는 건 곧 정복당하는 것이었고, 로마 시민은 정복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노예랑 하는 것은 금기는 아니었지만, 그다지 좋은 시선은 받지 못했다. 대 카토는 미소년 노예에 높은 값을 치는 현실을 보고 로마가 망하게 생겼구나하고 한탄하기도 했었다. 시나 문학을 봐도 그리스와 비교하면 동성애자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시도 많았다.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가 동성애를 혐오한 로마인 중 하나. 동성애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네로가 미움받은 이유 중 하나가 공공장소에서 동성애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고, 여러모로 유능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그의 동성애 취향만은 로마인들이 스스럼없이 깠다. 하지만 1세기 경 로마에는 [이런 유물]도... 로마시대의 동성애는 지배계층 입장에서는 뿌리 뽑고 싶은 악습이었지만 이런 게 나올 정도로 어찌할수 없는 풍습이었다. 애시당초 세네카나 대 카토가 깐 정도면 당시 이곳저곳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던 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를 종교적인 죄악으로 보았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이단자, 악마숭배자와 동급으로 판단하여 동성애자를 색출하여 그냥 죽이거나, 고문하다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거나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지만 왕이나 상류계급에선 묘하게 동성애가 성행했던 것 같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아예 자기 동성애인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고 하고, 리처드 사자심왕도 동성애의 의심을 받은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분위기가 르네상스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면서 동성애는 귀족이나 상류층들의 타락한 관습이라는 이미지가 생긴것으로 보인다. 근대 영국에선 해군들이 묘하게 동성애 상대로 인기를 누렸다고 하며 귀족이나 사회명사들이 어린 소년들을 돈주고 동성애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1889년의 런던 클리블랜드 거리의 동성애 매춘 여관이 발각된 '클리블랜드 스캔들'은 영국 사회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었다. 미묘하게 전보들을 배달하는 소년들이 부업으로 이 여관에서 동성애 매춘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외로 종교의 세가 약해진 근대 후기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강화되었는데, 이것은 막 발전하기 시작한 정신분석 등의 이론에 따른 '동성애는 고칠 수 있는 정신병'이라는 통념에 기인한다. 특히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미화되는 여성 간의 동성애보다는 주로 사회 주도층의 혐오감을 사기 쉬운 남성 간의 동성애는 향후 몇 십년 동안 사회적인 비난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전집을 보면 동성애가 질병이 아님을 선구자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있다.-- 냉전 무렵 소련 등 동구권에서는 남성 정치인들 간의 키스가 친밀감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동성애 금기가 퍼진 서구권에서는 혐짤이나 시각공격으로 봤다. 다만 당시 소련에선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이유인 즉슨, 스탈린 시대 들어서 동성애가 금지되었고, 스탈린 사후 해빙기에도 윗 분들이 까먹었는지 동성애 금지법이 페지되지 않아서 그랬던 것. 한국은 꽤나 유교 문화 때문인지 동성애관련 떡밥이 묘하게 적은데 비해, ~~유교의 원산지인~~ 중국일본은 동성애 관련 기록이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는 동성애라기보다는, 전쟁터에 여자를 데리고 나가면 안 되니까, 혹은 에 여자를 들이면 미혹되기 쉽다는 이유로[* 일본 불교는 한국 불교와 달리 세속적이라 승려의 혼인도 허락하지만, 아직 수행승인 이들은 여성을 멀리할 것이 권장되고 기본적으로 불교이니 만큼 분방한 육욕은 경계해야 한다.] 대신 미동을 쓴다거나 하는 경우였다. 유명한 미동으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미동 모리 란마루등이 있다. 그외에도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되는 불자들이 어린애들로 욕구를 해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자랑 하는 건 안되면서 남자가 상대면 괜찮다니 무슨 발상이냐 싶지만... 이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군신관계의 일환으로 주군과 가신이 정을 통하는 경우도 있었던 모양이다. 주군의 시동노릇을 하던 시기 동침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자 주변에서 부러워 했다는 기록[* 다름아닌 오다 노부나가의 시동 출신인 마에다 도시이에의 이야기다.]도 남아있다.[* 조선통신사를 역임한 신유한이 남긴 《해유록》에 보면 일본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와 일본인들이 동성애를 찬양하는 시를 남겨두고 있다. 하도 괴이하게 생각했던 신유한이 일본측 통역을 담당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에게-참고로 호슈 이 양반은 일본 제일의 조선통이자 유학자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자 호슈 왈, '님은 그 즐거움을 모르나봐요?'라고 했다고 #] 그 외에도 다케다 신겐이 그의 동성애 애인에게 그윽한 심정을 담아보낸 러브 레터 등 일본 중세시대에는 무사, 귀족, 지식인등 지배계급에서의 동성애가 오히려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관련 기록도 풍부하게 남아있다. 오히려 동성애 하지 않는 지배계급이 별종으로 취급받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는 본래 천민출신으로서 훗날 일본 최정상의 권력에 올랐어도 동성애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히데요시가 여자만을 좋아하자 이를 걱정한 신하들이 히데요시에게 제발 좀 남자도 좋아하시라고 간했다는 기록은 있다. 일본 대중문화가 비교적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것도 이런 역사적 전통(?)에 근거한 것. 이슬람권의 청소년의 경우엔 대부분 정략결혼에 결혼전에 아예 자유 연애를 할수 없는 너무 보수적인 문화의 반작용으로 의외로 '동성애'를 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성애'를 하면서도 자신이 동성애자 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적은 듯하다. 사실 의외로 이슬람권 국가들도 과거에는 그닥 동성애를 배척하진 않았다. 이란에서는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터키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읽어보면 제자를 사랑하는 화가의 이야기나 유럽의 이교도들이 소년의 맛을 모른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나온다.